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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 ETC

피아노 협주곡 3번, 베토벤

Alice Sara Ott /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Piano Concerto No. 3 in C minor, Op. 37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에 영감을 받은 곡입니다.

 

I. Allegro con brio
II. Largo
III. Rondo – Allegro

 

I. Allegro con brio

Orchestral exposition - Second exposition - Development - Recapitulation - Cadenza - Coda순으로 이어진다.

피아노는 Second exposition부터 들어와서 협연한다.

 

Cadenza : 베토벤은 하나의 cadenza를 썼습니다. 베토벤이 쓴 cadenza는 때때로 폭풍우가 치고 피아니시모로 진정되는 일련의 트릴로 끝납니다.

카덴차(카덴짜) Cadednza는 주로 협주곡에서 주인공 독주악기의 기교와음색을 한껏 발휘하기 윈한 부분으로, 수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를 멈추고 오직 솔로 악기만의 연주로 무대를 채우는 부분을 말한다. 거의 모든 협주곡에서 카덴차부분이 들어가있으며, 연주자 입장에서는 실력발휘하기 딱 좋은 부분이다.

 

여담이지만, 어제 조성진 연주자가 모짜르트의 미발표곡을 연주하였다. 거기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Stein & Son 피아노를 쓰길래, 검색해보니 대략 22만달러 정도하나보다.. 

 

www.sfsymphony.org/Data/Event-Data/Program-Notes/B/Beethoven-Piano-Concerto-No-3

 

San Francisco Symphony - Beethoven: Piano Concerto No. 3

Concerto No. 3 in C minor for Piano and Orchestra, Opus 37 LUDWIG VAN BEETHOVEN BORN: December 16, 1770 (his baptismal certificate is dated the 17th). Bonn, then an independent electorate DIED: March 26, 1827. Vienna COMPOSED: Ideas for what would become B

www.sfsymphony.org

 

작곡

베토벤의 C단조 피아노 협주곡의 아이디어는 1976년 초부터 그의 스케치북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1999년 가을까지 본격적인 작곡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첫 악장은 1800년 4월 2일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은 1802년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갓고 1803년 까지 완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프로이센의 루이 페르난드 왕자에게 바쳐졌습니다.

초연

비엔나(오스트리아 빈) Theater an der Wien, 1803년 4월 5일. 

작곡 배경

베토벤은 본에서 비엔나로 1792년에 가장 저명한 하이든을 공부하기 위해 이사했습니다. 하이든과의 레슨은 거의 적었고 쓸모도 없었지만, 베토벤은 지나간 마스터의 작품을 교향곡 모델로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의 초기 교향곡과 협주곡에서는 고전적인 구조(Classical structures)를 고수했습니다. 그러나, 멜로디(melodies) 리드미컬한 제스쳐(rhythmic gestures) 그리고 표현력(phrasing)에 대해서는 모짜르트를 가장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 다단조 K.491 (Mozart’s Piano Concerto No. 24 in C minor, K.491)은 낭만주의 세대(Romantic generation)가 가장 좋아하는 우울하고 절망적인(brooding, even desparing work)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은 그런 열렬한 지지자중 하나였습니다. 한번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크래머(Johann Baptist Cramer)와 거닐던중 모짜르트 협주곡의 야외공연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베토벤은 자리에 멈춰, 독특하고 아룸다운 모티브에 주위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감탄과 절망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크레이머, 크레이머! 우리는 결코 이와 같은 작곡을 할 수 없을거야!", 크레이머의 미망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테마가 반복되고 절정에 이르렀을때, 베토벤은 그의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가능한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열광을 표현했습니다." 모짜르트 협주곡에 익숙한 청취자들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모짜르트 협주곡의 오프닝 악장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전문가 수준에서, 새로운 세기(centuray)로 넘어오면서 베토벤에게는 일이 잘 풀려왔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삶은 청력문제가 시작되면서 더욱 힘들어졌습니다만..) 그는 비엔나에서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얻었고, 귀족들은 그들의 딸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가르치기 위하여 베토벤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베토벤은 큰 스케일 장르의 초기작업을 시작했습니다. 1800년 4월 2일, 비엔나의 Burgtheater에서 그의 첫 benefit concert를 열었습니다.(당시에는 benefit concert는 작곡가들의 benefit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은 모짜르트 교향곡, 새로이 공개되는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피아노 즉흥연주(improvisation),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아마도 1번, C장조), 그리고 2개의 새로운 베토벤 작품인 베토벤 7중주 (the Opus 20 Septet)와 교향곡 1번입니다.

베토벤은 benefit concert에서 C단조 피아노 협주곡 3번을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미완성 상태였습니다. 1악장은 완성하였으나 2악장은 세부 스케치만 된 정도였습니다. 협주곡은 계속해서 변경 및 발전되었으며, 작곡은 3년 반이 넘도록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그가 피아노 파트를 작곡하는데 걸린 시간을 포함하면 1년을 더 추가해야합니다. 당연히, 베토벤은 그의 초연에서 피아노 솔로 파트를 작곡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작품은 그의 머리 속에 있었고 연습하는 시간은 상당한 양의 즉흥연주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1악장에 카텐차 부분은 초연에서는 작곡되지 않았고, 초연에서 베토벤이 피아니스트로 올라와서 즉흥연주를 했다는 내용을 설명하는 것임. 지휘자 (비엔나의 Theater an der Wien의 담당지휘자) Ignza von Seifert는 1803년에 초연을 시작하면서, 놀라운 경험에 대해 설명합니다.